그 아저씨는 귀머거리였다.
그 아저씨를 처음 만난 것은 아직도 바람이 싸아하게 코끝을 가르고 지나가는 지난 봄날이었다. 우연찮게 그 아저씨를 알게 되었고, 아저씨가 조각을 한단 말에 호기심이 동해 아저씨 혼자 사는 단칸 셋방을 구경하러 갔다가, 그 '조각'이란 말이 '목공예'를 뜻함을 알고 입꼬리를 찡그리며 실망했던 그 봄날은 그러나 햇살만은 따사로왔다.
아저씨는 선천적인 귀머거리였다.
선천적인 귀머거리가 다 그렇듯 아저씨 역시 말을 배울 수 없었지만 어떻게 배웠는지 아저씨는 말을 할 줄 알았다. 물론 발음은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로 부정확했고, 열댓명 모아놓고 떠들 듯 큰 소리로 외치며 말을 했지만 적어도 쌍방간의 필담은 쓸모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아저씨 옆에 자리를 잡아 앉고 종이를 꺼내 밥상 위에 놓았다.
'목공예는 어떻게 배우게 되셨어요?'
"내애가... 음... 훈년원에... 훈년원 알지? 장애자드을... 음... 국비로오... 직업! 가르쳐 주는 데에... 거기서어! 음... 배웠어어..."
'꽤 잘하시네요?'
"음... 친구도! 음... 이름이... 뭐라고, 했지이?"
"이, 세, 화요!"
"으응?"
나는 일부러 아저씨가 쉽게 볼 수 있도록 입모양을 크게해서 말했다.
"이! 세! 화!"
"이... 세..."
"화! 호..아!"
"...화?"
"네."
고개 끄덕끄덕.
아저씨는 늘 입가에 붙어 떠나지 않는 웃음을 쓰게 일그러트리며 탁자 위의 종이를 두드렸다. 마치 뭐엔가 쫓기는듯한 다급한 몸짓으로.
아저씨는 걸을 때 빼곤 늘 뭐엔가 쫓기듯 손부터 어깨까지를 다급하게 움직였다. 아마도 무수한 조각칼을 번갈아 찾아 쥐고 나무를 빠르게 깎던 습관이었던 듯. 아저씨의 그런 몸짓은 왜인지 나까지 초조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초조해지면 안됐다.
'이 세 화'
"음... 이... 세... 화 친구도! 음... 조금만, 조금만 하면! 더! 음... 자하 수! 있어."
"네에..."
나는 아저씨에게 웃음을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리임! 그림! 그린다고오... 했지?"
"네."
또다시 고개 끄덕끄덕.
"끄으으으음!"
기묘한 신음소리. 아저씨는 언제나 몸을 움직이기 전에, 혹은 무언가를 시작하려 하기 전에 꼭 길게 신음소리를 냈다. 그 신음소리는 아저씨의 의지에 대한 실행의 전주곡.
아저씨가 몸을 일으켰다.
"음... 잠깐만... 기다려! 씨이..."
잇새로 빠져나가는 숨소리. 문자로 옮기기가 까다로운 그 소리는 아저씨의 의지에 대한 실행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무리! 음, 뭇... 이 끓었어!"
물이 끓다니? 나는 맞은 두 벽으로 현관문과 방문을 달고 있는 작달막한 부엌으로 빠져나가는 아저씨의 등을 봤다. 적당히 살집이 오른, 보통 평범한 중년 남성의 뒷모습.
빼꼼이 열린 방문까지 무릎걸음으로 기어간 나는 부엌을 내다봤다. 아저씨는 여전히 등을 보인채 가스 레인지 앞에서 분주한 손놀림을 하고 있었다. 물이 끓었다더니 뭔가 김이 오르고 있었고, 선반에 올라가있던 평범한 모양의 찻잔이 내려지고, 찻숟가락이 컵에서부터 빠져나가고.
나는 열린 방문으로 물끄러미 아저씨의 하는 양을 지켜봤다. 여기 오기 전까지 하루종일 피워댄 담배가 기관지에서 가래들을 밀어냈다. 크음, 하는 짧은 기침소리. 아저씨의 등은 여전히 내게 향해있었다.
"자아아, 이거... 이거, 마셔봐."
아저씨는 김이 오르는 찻잔 두 개를 접시 위에 올려 가지고 들어왔다. 뭘까?
"꾸차야!"
"꾸차요?"
노리끼리한 빛깔이 도는 물. 아저씨의 발음으로는 꾸차. 꿀차였다.
"이거어! 음... 진짜 꾸리야아! 토종꾸! 음... 토종... 꿀! 아지? 그거로, 만든거야. 씨이..."
"아아..."
나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쥐고 고개를 끄덕였고, 아저씨는 꽤 장한 일을 했다는 아이의 얼굴이 되어있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입모양을 크게하며 말했고,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저씨의 흐믓해하는 얼굴은 오래갔다.
"마셔, 마셔."
피어오르는 김이 안경에 하얗게 달라붙었다. 달착지근한 맛이 혀를 감아 맴돌았다. 아저씨는 후루룩 후루룩 자신의 잔을 마셔대더니 또다시 끄으으응하는 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여기에! 카리 있어!"
씨이...하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는 천장 바로 밑에 바짝 올라가 붙은 납작한 나무문을 열었고, 씨이씨이하는 소리가 잦아들도록 아저씨의 손은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이윽고 먼지가 뽀얗게 앉은, 시커멓고 커다란 나무 상자를 끄집어 내렸다.
나는 여전히 찻잔을 두 손으로 쥐고 밥상 위에 꿍!하며 내리는 상자를 보았다.
"씨이... 후!"
먼지가 따스한 차의 김처럼 피어올랐고 내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뒤로 빼자 그것을 본 듯 아저씨의 얼굴은 일순 겸연쩍어졌다.
상자 안에는 서른자루쯤 되는 조각칼이 가득히 들어차있었다. 낡고 때에 닳아 반들반들해진 칼자루들.
개중엔 검은 압착테이프로 감은 자루도 있었고, 칼의 몸통부분은 불그죽죽하게 녹이 슬어있었지만 짧은 날 부분만은 하얗게 세워져있었다.
"와아..."
나는 감탄하는 얼굴을 했고, 아저씨는 다시 흐뭇한 얼굴이었다. 그 흐뭇한 얼굴을 여전히 유지하며 아저씨는 칼 하나와 칼들 사이사이에 처박혀있는 작달막한 나무토막 자투리 하나를 꺼냈다.
"음... 이거어! 나리! 아주우 나카로아! 자못 만지며언! 손, 짜라져!"
그러면서 아저씨는 내 손을 잡아당겼다. 잠깐 나는 긴장했다. 그러나 내 가운데 손가락 끝은 하얗게 선 조각칼의 날 위에 있었다. 나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저씨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내 손을 놓아주고도 아저씨의 손은 여전히 허둥대듯 조각칼들을 하나하나 집어보았고, 아저씨는 내게 조각칼의 자루 다는 법이나 깎을 때의 각도 등을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벌써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확실히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힘겹게 이해해야 하는 것도, 목소리에 의한 내쪽의 의사전달이 거의 무조건적으로 아저씨의 의식 밖에서 차단당하는 것도, 그리고 아저씨가 신이 나서 나에게 베풀어주는 모든 친절과 웃음들도 겨우 10분이 조금 넘은 시간 동안에 갑갑하고 짜증스러워진 것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조각칼에 대해 설명한 아저씨는 다시 차곡차곡 칼들을 상자 안에 정리해놓고 상자의 뚜껑을 닫아, 한 번의 끄으으응 소리를 내며 일어섬을 시작으로 꺼낼 때의 동작의 역순을 실행했다.
아저씨가 등을 내게로 돌리고 힘겹게 씨이씨이 소리를 내며 좁은 다락에 상자를 다시 넣고 있는 동안 나는 아저씨의 방안을 주욱 둘러봤다. 큼직하게 방 한켠을 다 차지하고 있는 옷장, TV와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들을 얹고 있는 문갑장, 거기에 혹은 널리고, 혹은 담겨진 수많은 작은 가재도구들...
내가 방안을 휘이 둘러보는 동안 아저씨는 씨이씨이 소리를 끝내고 다락문이 높다랗게 달린 벽 앞에 엉거주춤 서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안을 두어번 둘러보던 내 눈이 아저씨의 얼굴에 가 멈췄다.
아저씨의 일그러뜨리듯 웃는 얼굴. 순간 나는 그 얼굴에서 나를 영원히 이 방안에 가둬두려는 아저씨의 의지를 읽는듯했고 서늘한 한기가 몸을 훑고 감을 느꼈다.
"밥! 머거야지이!"
점심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었던가? 이른 아침만 들고 나온 터였지만 원래 소식하는 편인지라 그다지 배고픈 줄은 몰랐다.
"아녜요."
이번엔 도리질. 아저씨가 한 말에 대해 아저씨 앞에서 고개를 도리질친다는 것은 아저씨에게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저씨의 얼굴에선 웃음이 없어지고 일그러짐만 남았다.
"별로 배 안고파요. 아침을 늦게 먹었거든요."
나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배를 스다듬었다. 그래도 아저씨에게 뜻이 전달되지 않을까봐서 나는 밥상 위의 종이에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옮겼다. 아저씨는 허리를 굽혀 그 글씨를 봤고 얼굴의 일그러짐은 금방 서운함이 되었다.
"밥! 먹고 가며언... 으으으음... 좋은데! 으으으음... 아주 음... 마있게! 음... 얌얌!"
서운함 위에 일그러진 웃음이 다시 떴다.
나는 아저씨의 생각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아저씨의 의사표현과 이 좁은 단칸 셋방은 나에게 너무 불안스러웠다. 내가 생전 처음 마주해본 이른바 장애자. 그 장애자란 말이 뜻하고 있음은 나와 같은 정상인과의 길고 깊은 괴리였고, 아저씨는 그 괴리를 뛰어넘으려 하는 것이었으며 나 또한 그러한 아저씨의 노력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내가 의식적으로 피하려고만 하는 부담감과 불안함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무엇이 옳은 것인가 하는 도의적 가치판단을 자꾸 유보시키고만 있었다.
'오늘은... 조금 이따가 약속도 있고 해서... 다음에 또 올게요. 그땐 같이 점심식사나 하죠.'
나는 빠르게 종이 위에 펜을 놀렸다.
종이 위에 하나씩 생겨나는 글자들을 읽어나가는 아저씨의 얼굴에는 서운함이 더 짙게 깔렸다.
"그래애! 약속... 있으며언... 가야지!"
종이에서 눈을 떼 나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얼굴엔 그새 서운함이 가셔 있었고, 아저씨는 호탕한 사람의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나는 그 웃음에 더욱 미안해졌다. 그 미안함은 곧바로 얼굴에 쓴웃음으로 나타났고.
"누구... 애인 만나?"
"아뇨..."
고개를 저었다. 얼굴의 쓴웃음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사람 좋은 웃음을 띄운 아저씨의 얼굴과 쓴 웃음을 짓고 있는 내 얼굴은 그렇게 잠시 허공에서 만나고 있었다. 짤막하게, 두 웃음 사이의 공기는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며 허물어져 내렸고, 나는 속으로 '젠장!'을 외치며 고개를 돌려야했다.
아저씨는 현관문 밖으로 나와 주택가 사이를 걸어내려가는 내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발을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아저씨는 현관문을 열어잡고 여전히 웃음을 지은 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저씨의 가라는 손짓. 가라는 손짓.
주택가를 비추고 있는 봄날의 햇살은 여전히 따사로왔고 한낮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아낙네들은 동네 가게에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너댓걸음 길을 내려가다가 나는 다시 뒤를 돌아다봤다. 벽돌로 지은 2층 양옥집의 2층 한 구석. 시커먼 알루미늄 새시 문은 그새 닫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