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초반쯤, 티비에서 유니콘 관련 애니메이션 두 편을 틀어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유명한 데스카 오사무의 <유니코>로, 어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그림체를 통해 아기 유니콘인 유니코와 아기악마 사이의 우정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낸 수작이었죠. 데스카 오사무의 작품이 늘 그렇듯, <유니코>는 10대 초반 아이들에게 깊은 인상과 재미, 그리고 교훈을 진하게 남겨준 기억이 있습니다.
또 하나는 <유니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깊은 인상을 남겼지만 나이가 들 수록 그때 봤던 그 작품에 대한 기억이 점점 더 진해지는 그런 작품이었는데, 그게 바로 지금 얘기할 <라스트 유니콘>입니다.
미국과 영국 배우들의 더빙, 일본 스텝들의 원동화로 영어와 독일어로 제작된 이 애니메이션엔 미아 패로우, 크리스토퍼 리, 제프 브리지스 등 톱스타들이 그 목소리를 빌려주고 있는데, 24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배우들 일부가 다시 모여 실사영화로도 제작이 되고 있답니다. 자기자신만을 위해 유니콘들을 잡아놓은 해가드 왕 역은 크리스토퍼 리가 다시 맡았고 유니콘의 목소리를 연기한 미아 패로우는 이번엔 밥집아줌마 몰리 그루 역을 맡는다는군요. 젊은 마법사 슈멘드릭 역엔 <벨벳 골드마인>의 미소년 조나단 라이-마이어스가 출연하고 제프 브리지스가 연기한 릴 왕자와 유니콘의 목소리연기는 아직 결정이 안난 모양입니다. 뭐 IMDB의 정보가 언제나 들어맞는 건 아니니 모를 일이긴 하지만요.
어디선가 퍼온 독일어 포스터입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유니콘의 숲으로 알려진 아름다운 숲은 유니콘의 힘으로 언제나 봄을 유지하고 있지요. 이 숲에선 사냥꾼들도 동물을 잡지 않는데, 그건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유니콘에 대한 예우라고나 할까요. 암튼 숲에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냥꾼의 이야기로 자신이 세상에 단 하나 남은 유니콘이란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유니콘은 자신의 동족을 찾기 위해 숲을 떠나 여행을 합니다.
하지만 유니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 순백색의 아름다운 유니콘은 그저 하얀 암말로밖에 안보이죠.
여행도중 진귀한 괴물들을 데리고 여행하는 마녀에게 사로잡힌 유니콘은 유니콘인데도 불구하고 가짜 뿔을 달고 유니콘행세를 하게 됩니다. 이미 유니콘을 믿지 않게 된 사람들은 눈 앞에 있는 진짜 유니콘 대신 마녀가 달아놓은 가짜 뿔을 보며 자신이 보는 것을 유니콘이라고 믿지요. 이런 아이러니를 깨기 위해 떠돌이 삐리리 마법사 슈멘드릭은 유니콘을 풀어줍니다. 풀려난 유니콘은 만티코아 행세를 하던 늙은 사자와 사티로스 행세를 하던 늙은 원숭이 등 가짜괴물들을 하나하나 풀어주는데, 그러다가 진짜 하피마저 풀어주고 하피는 자신을 가둬두던 마녀를 해치고 날아갑니다.(괴물들의 이름에 대해선 검색엔진을 돌려보시길....)
어찌어찌해서 동행이 된 슈멘드릭과 유니콘은 숲속에 은거하고 있던 [낡은] 영웅 캡틴 컬리 일당을 만나고 캠프에서 마법을 써서 로빈 훗의 환상을 만들어낸 슈멘드릭은 일당에 의해 나무에 묶이지만 유니콘의 도움으로 풀려납니다. 그리고 일당 가운데 유일하게 전설을 믿는 밥집 아줌마 몰리 그루를 일행으로 받아들이지요.
유니콘의 숲에 사는 마지막 유니콘
그림이나 색감은 아주 아주 이쁘기가 그지 없습니다.
유니콘에게 붉은 황소와 해가드 왕에 대해 알려주는 (약간 정신나간) 나비
길을 떠난 유니콘. 봄날은 가고....
뜨거운 여름의 사막을 지나....
가을 숲을 거쳐....
추운 겨울까지.....
그러다가 만난 게 이 [운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마녀입니다.
[운명]에 의해 졸지에 가짜 뿔을 달고 유니콘 행세를 하게 된 유니콘.-_-;;;
풀려난 하피에 의해 최후를 맞는 마녀(또는 그의 조수)
한때는 잘나갔을 이들도 영웅과 전설이 부재하는 이 시기엔 기껏 쥐나 잡아먹으며 연명합니다.
로빈 훗과 메리엔의 환상, 그리고 그 앞에 서서 허공에 인사하는 캡틴 컬리.
환상을 불러낸 슈멘드릭은 나무에 묶이지만 마법을 써서 저런 요상한 생명체를 만들어냅니다.
어린 맘엔 꽤나 충격이었댔지요. 흘흘흘
세상의 모든 유니콘들을 몰아다가 해가드 왕에게 갖다바친 붉은 황소
슈멘드릭은 유니콘을 지키기 위해 유니콘에게 마법을 걸어 인간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몰락했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왕국과 유니콘들을 가지고 있는 해가드 왕과 그의 의붓아들 릴 왕자.
해가드왕의 성 가까이 온 일행은 그곳에서 세상의 모든 유니콘들을 잡아간 붉은 황소를 만나고, 슈멘드릭은 유니콘을 지키기 위해 유니콘을 인간여자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왕의 성으로 들어서지만, 인간이 된 유니콘 아말씨아는 점점 자신이 인간의 틀 속에 갇혀감을 느끼지요.
유니콘은 점점 인간의 육체에 갇히기 시작합니다.
인간으로 변신한 유니콘, 아말시아 아가씨에게 제대로 꽂힌 릴 왕자는 환심을 사기 위해 용사냥까지 자처하고...
해가드 왕은 아말씨아에게 자신이 유니콘을 잡아들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붉은 황소에게 쫓긴 유니콘들은 해가드 왕의 성 앞 바다 속에 갇히고 말았지요.
영화는 이후에도 [진실]과 [믿음]의 두 키워드를 이용한 몇가지 트릭을 선보입니다. 한 예로, 갇힌 유니콘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을 아는 해골에게 빈 병을 건네주며 와인이라고 속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해골은 빈 병을 입에 물고 와인을 음미하지요. 물론 반대로 인간이라고 하는 눈에 보이는 육체에 갇힌 유니콘은 점점 자신의 내부에 있는 유니콘을 잃어버리려고 하기도 하지요.
어찌됐던, 자신의 탐욕을 위해 유니콘들을 잡아다가 가뒀던 왕은 몰락하고 그와는 달리 (피를 이어받지 않았기 때문에!) 순수해서 애정을 알던 왕자는 살아남아 또 다른 길을 떠납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는 당연하게도 몇가지 교훈을 내포하고 있는데, 대략 요약하자면 [진실을 믿어라]와 [탐욕은 나쁘다] 정도가 되겠군요. 하지만 이런 교훈들은 제쳐놓고 이 애니메이션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닙니다.
위에서도 말한 진실을 가짜로 포장한 뒤 진실이라고 믿게 하는 아이러니는 어쩌면 21세기 초반인 현재에 어울리는 상황일지도 모르겠군요. 그리고 시종일관 펼쳐지는 수작업 그림들은 요즘 흔해진 씨지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아무리 <슈렉> 시리즈의 배경이 아름다웠어도 이 작품의 배경에는 미치질 못하더군요.
그리고 또 머리속에서 구체화되지 않고 있는 뭔가가 있는데, 그냥 어린 시절 겪었던 것에 대한 노스텔지아 비스무리 한 것이라고 해두지요.
한마디 더 해보자면, 리메이크되는 <라스트 유니콘>은 아무래도 안나오는게 더 나을 듯 하네요.